2013.06.08 19:48

조우성 변호사의 ‘Pacta Sund Servanda’


 첫 번째 이야기 : 흥부가 완창


‘Pacta Sund Servanda(팍타 준트 제르반다)’는 법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라틴어 법언(法諺 ; legal maxim)으로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변호사로서 경험하는 제 삶의 작은 이야기들을 이 대표적인 법언을 제목으로 해서 연재하고자 합니다. 법에세이, 즉 lawssay(로세이)입니다.



‘그 사람은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됩니다. 변호사님.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응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루에도 3-4차례 진행되는 회의에서 의뢰인들은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상대방에 대한 날선 공격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법률분쟁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에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계약’으로 결합된 경우다.


계약은 결코 아무하고나 체결하지 않는다. 보통은 계약을 체결할 때 ‘과연 내가 저 사람과 계약을 해도 될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여러 경로를 통해 상대방을 체크한 후 신중하게 결정한다. 그리고 계약문구도 세심하게 따진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사람과 결국에는 의견이 대립되고 급기야 소송에까지 이른 것이다. 


3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차가 막혀 결국 3시 40분에 영화관에 들어가게 됐다. 이미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 주인공은 상대방에게 욕을 퍼붓고 마구 폭행을 가한다. 영화를 처음부터 감상하고 있던 다른 관객들과는 달리 영화관에 늦게 도착한 관객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변호사는 이처럼 영화 상영 중간에 영화관에 들어간 관객과 비슷한 입장에 놓인다. 의뢰인이 비난하는 상대방은 불과 얼마전까지 같이 일을 도모하거나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그런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앞 부분의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듣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재 자신을 지배하는 결과에 사로잡혀 그 원인의 존재를 잊어 버리곤 한다



‘처음에 그 분과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언제부터 그 분과 삐걱거리게 된 것 같은가요?’

‘상대방으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볼 때, 상대방이 좀 이해되는 부분은 있으신가요? 아니면 전혀 이해가 안 되시나요?’


나는 이 과정을 ‘흥부가 완창’이라 부른다.


의뢰인이 무리없이 흥부가를 완창할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얼쑤’, ‘그렇지!’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 일이다.





판소리 흥부가를 제대로 완창(完唱 :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하려면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모든 사건이 3시간 씩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두시간 정도는 들어야 의뢰인과 상대방 간의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감정의 기복들, 다양한 역학관계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소득은 의뢰인 스스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세세한 이야기까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 저 친구가 이 대목에서 마음을 다친 건가?’라는 자기직면을 할 수도 있다.


의뢰인이 이러한 자기직면을 하게 되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이 때부터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문제해결도 가능해 진다.


나는 오늘도 북과 장구를 준비해 놓고 의뢰인을 맞는다.


의뢰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흥부가 완창을 할 수 있도록, 고수(鼓手)가 되어 추임새를 넣는다. 그 과정은 또 하나의 살풀이가 될 수 있다. 의뢰인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18 23:46



조우성 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어느 누나의 소송


송무담당 과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온다.


“변호사님, 이거 좀 만만치 않은 사건인데 돌려보내기가 좀 그렇습니다. 사정이 너무 딱한데요. 상담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람 좋기로 유명한 박 과장. 일반적인 로펌의 송무과장이라면 돈 되는 사건 위주로 사건을 수임하면서 비용에 대해서도 철저해야 할 것인데, 박 과장은 마음이 비단결이라 힘든 처지에 있는 의뢰인은 그냥 넘기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박 과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사건, 참 특이한 사건이었다.


누나가 자신의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이 건물에서 나가라’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부동산은 누나의 소유. 누나는 현재 부산에 거주.

2) 누나는 아버지와 남동생이 서울에 있는 자신의 건물 2층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별도의 보증금이나 월세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약 10년 가량 위 부동산에서 별다른 대가를 내지 않고 거주하고 있었다.

3) 누나는 최근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시세에 합당한 보증금과 월세를 낼 것을 전제로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이를 거부했다. 

4) 결국 누나는 두 사람을 상대로 기존 무상의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는 통보를 하고 건물명도를 요구한 것이다.


소장 내용만을 놓고 보면 아버지와 동생 측에서 반박할 내용이 거의 없었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특별한 기간을 정해놓지 않고 계속되는 임대차 관계에서 집주인(임대인)이 계약의 해지를 통고할 경우 6개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민법 제635조 제2항 제1호). 즉 아버지와 동생은 누나가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한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한 날에 이 건물에서 나와야만 한다. 


이미 소송은 변론기일을 2차례나 진행한 상황이었으며, 아마도 2-3차례 변론기일을 더 진행한 다음에는 재판이 종결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동생측은 변호사 없이 의뢰인이 직접 사건을 진행해왔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변호사 선임을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남동생인 형욱씨(가명)를 사무실로 와달라고 한 다음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장 내용만 보더라도 누나는 재력이 충분한 반면 아버지와 남동생은 당장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나가면 마땅히 잠 잘 곳도 없는 상황인데, 이렇게 매몰차게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데는 뭔가 사연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형욱씨는 형욱씨대로 누나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누나는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자기 아버지를 이 엄동설한에 바깥으로 내몰게 합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나는 형욱씨를 진정시키고 그들의 가족사를 하나씩 캐물어 보기 시작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대화 속에 얻어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누나와 형욱씨는 10살 터울이었다. 아버지는 외항선을 타는 뱃사람이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다리 한쪽을 심하게 다쳐 더 이상 배를 타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노름과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심한 폭력을 가했다. 누나는 아직 어렸기에 그런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결국 폭력을 참다 못한 어머니는 누나가 15살 되던 해에 가출을 했고 그 이후 누나는 아버지와 형욱씨를 위해 집안 살림을 해야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나는 고등학교도 중퇴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동생인 형욱씨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다. 형욱씨는 누나 덕에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누나는 악착같이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이후 누나는 부동산 경매에 손을 대기 시작해 작은 평수의 부동산을 낙찰받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발전해서 서울 북부에 2개의 건물을 소유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형욱씨는 자기도 사업을 해 보겠다고 누나에게 사업자금을 대줄 것을 요구했고, 누나는 몇 차례에 걸쳐 합계 약 5억 원에 달하는 돈을 조달해 주었다. 하지만 사업 경험이 없던 형욱씨는 계속해서 사업에 실패하고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러던 중에 누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평생을 아버지와 남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누나로서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생기자 많이 기뻤나 보다. 그런데 그 때 문제가 발생했다. 누나가 소개한 남자에 대해 아버지와 남동생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남자의 학력이 고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누나는 자신도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는데 남자의 학력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했지만 대학을 나온 아버지와 남동생은 그래도 고졸인 남자와의 결혼은 안 된다면서 반대했다. 누나는 막상 그 남자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면 가족들의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그 만남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형욱씨는 그 남자에게 면박까지 주고 말았다. 


나는 그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평생을 아버지와 남동생을 위해 헌신한 누나가 스스로 좋다고 하는 사람을 굳이 가족들이 반대할 이유가 있었나요?”라고 물어봤더니 형욱씨는 “그 사람은 누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누나 돈을 보고 결혼하려는 겁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버지와 저는 누나를 위해서 그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만약 누나가 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재산의 대부분은 그 사람에게 넘어갈 거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내 느낌에 아버지와 형욱씨는 누나가 보유한 재산이 그 남자에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어떻든 누나는 그 이후 아버지, 동생과 일체의 연락을 끊었고 사업차 부산에 내려가면서 아버지와 남동생을 건물에서 내보내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도록 변호사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누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을 아버지와 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축복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 사람에게 면박까지 주었으니 야속함과 섭섭함에 분노까지 더해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 버린 듯 했다.


나는 그 동안 소송진행 과정에서 오갔던 문서들을 살펴보았다.

누나측은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었으므로 군더더기 없이 쟁점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반면에 아버지와 동생측에서 제출했던 문서(준비서면)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1) 어릴 때부터 누나는 자기중심적이었다.

2) 커서도 돈을 번답시고 아버지와 동생에게 항상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취했다. 

3) 지금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기적으로 돈만 밝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소송은 천륜을 배반한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소송이 진행되어서는 형욱씨가 소송에서 승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욱씨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누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법리적인 결과에 따라 선고하는 판결에서 승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꼭 승소하게 해 주세요. 만약 이 사건에서 우리가 지고 나면 누나는 분명 강제집행 같은 걸 해서라도 우리를 이 건물에서 끌어 낼 겁니다. 누나는 지금 완전 돌아버렸어요. 제 정신이 아니예요.”


나는 남은 재판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형욱씨, 제가 하자는 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야만 제가 이 사건을 맡을 수 있습니다.”


나는 형욱씨에게 다짐을 받고 다음 재판을 위한 준비서면(재판을 위해 주장을 담아 법정에 제출하는 서면)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내가 변호사로서 이 사건을 정식으로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고 기존처럼 계속해서 형욱씨가 직접 서면을 작성하는 형태를 취했다. 물론 그 서면의 내용은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작성한 서면의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① 문득 소송을 진행하다가 과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② 나와 아버지에게 누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③ 그 동안 누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이 컸다. 특히 매형되실 분을 데리고 왔을 때 마음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 것이 두고 두고 마음에 남는다.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한 따뜻함을 그분에게서 느꼈을 텐데 이를 헤아려주지 못했다. 


④ 아버지와 나는 평생 누나에게서 짐만 되는 존재였다. ⑤ 이번 사건의 결과에 상관없이 더 이상 누나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


이 초안을 읽어 본 형욱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렇게 우리 잘못을 시인하는 서류를 법원에 내면 누나는 더 기가 살 텐데요? 오히려 더 불리해 지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가더라도 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남은 방법은 이것 뿐이에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형욱씨는 못내 불안해하면서도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3주 뒤 재판 당일. 나는 정식으로 위임장을 제출한 대리인이 아니었으므로 법정에는 출석했지만 방청석 앉아서 형욱씨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았다. 


형욱씨의 사건 번호가 판사님에 의해 호명되자 누나측 대리인인 변호사와 형욱씨가 판사님 앞에 섰다. 그 때 누나 측 변호사의 발언,


“재판장님. 원고(누나)측이 이 사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합니다.”






재판장이 물었다.

“아? 그래요? 소송을 취하해 주신다면 우리야 편하고 좋지만. 그럼 피고측에서도 이의 없는 거지요?”

피고인 형욱씨는 얼른 방청석에 있는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욱씨는 “네, 이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네, 이 사건은 확정적으로 취하됐습니다. 그럼 피고들이 계속 이 사건 건물에서 사는 것을 원고가 허락해 준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까?”라고 원고측 변호사에게 물어보자 변호사는 “네, 이번 기회에 아예 영구적인 무상사용 계약서를 하나 쓰려고 한답니다. 그 뒷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원고로부터 위임을 받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형욱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형욱씨에게 ‘누나가 우리 준비서면을 보고 마음을 달리 먹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거 보세요. 역시 누나는 누나입니다. 누나가 이렇게 마음을 열었으니 형욱씨는 누나에게 앞으로 더 잘해야 합니다.”


결국 형욱씨와 아버지는 살고 있던 건물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가족간의 관계도 어느 정도 복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변호사는 소송에서 승소해야 한다. 

그런데 승소하는 방법에는 우리 의뢰인의 논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방식도 있지만 반대로 의뢰인의 주장을 중단하고 대신 상대방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줌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배웠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 누나의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에도 전해 오는 느낌이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1.04 19:54


조우성 변호사의 RMI(Risk Management Insight) 


(1) 법적 분쟁의 급격한 증가상황


▢ 테마


법률분쟁의 급증 및 법률지식 필요성 강조


▢ 사전체크


법률분쟁 발생 건수 및 그 증가세를 알고 있는지요?



▢ 질문


아직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법률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굳이 법적인 지식에 대해서 임직원들이 알아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답변


법적인 분쟁은 놀라운 속도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법적 지식은 전문 지식이 아닌 기업운영과 직장생활에 있어서 상식의 범주에 든다고 봐야 하며, 임직원들의 법적 지식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 해설


법률분쟁은 다양한 형태로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법률분쟁이 발생하는 현상을 당사자 간의 분쟁 강도(强度)로 분류해 보면 가장 낮은 단계인 ‘내용증명의 왕래’로부터 시작해서 ‘가압류/가처분의 제기’, ‘민사소송의 제기’를 거쳐 가장 높은 단계인 ‘형사고소’까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형사고소’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형사처벌을 원한다는 전제에서 제기되는 것이므로 감정적으로 상당히 격앙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강도가 심한 ‘형사고소’의 경우 1달에 몇 건 정도 수사기관(경찰, 검찰)에 접수될까요?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놀랍게도 1달에 약 8만 건 정도의 형사고소가 수사기관에 접수된다고 합니다. 1달에 8만 건이면 1년에 거의 100만 건에 가까운 형사고소가 수사기관에 접수된다는 말인데, 이는 정말 놀라운 수치입니다.


저는 ‘1달에 8만 건 형사고소 접수’의 의미를 좀 달리 바라 봅니다. ‘현실적으로 고소장을 접수한 건수’가 8만 건이라는 의미는, 현실적으로 고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소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은 그 3-4배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고소장을 실제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고소장을 쓰려면 변호사나 법무사를 만나서 상담을 해야 합니다. 또 상담을 통해 고소장을 작성했다고 해도 그것을 직접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다 ‘이겨내고’ 현실적으로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한 사람이 한 달에 8만 명이라는 것은 우리 인구수를 고려할 때 대단히 큰 수치임이 분명합니다.



법률 분쟁 중에서 가장 강도가 센 ‘형사고소’가 그러할진대, 이보다 강도가 낮은 민사소송은 한 달에 몇 건 정도가 접수될까요? 2011년 통계에 따르면 한 달에 약 20만 건 정도의 민사소송이 각급 법원에 접수된다고 합니다. 이 또한 놀라운 수치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미국을 소송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실제 인구수 기준으로 소송이 제기되는 비율을 따져보면 우리나라가 더 높다고 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소송을 실제 수행해 보신 분들은 이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은 대단히 신속, 정확,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대법원은 ‘신속한 재판’이라는 이념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효율적인 사법시스템이 더 많은 법적 분쟁을 낳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둘째, 국민들의 높아진 권리의식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셋째, 변호사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물론 변호사 업계에서는 변호사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에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제는 ‘법대로 하라!’는 상대방의 으름장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자연만을 벗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거래하며 산다면, 특히 기업을 운영하거나 기업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법률 분쟁은 필연적으로 맞딱드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적인 지식, 특히 분쟁과 관련된 지식을 사전에 잘 알아 두는 것은 기업경영과 직장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상식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advice/tip


더 이상 법률지식은 전문지식이 아닌 상식이 되었다고 보아야 함.


▢ 체크포인트


과연 우리 기업에 필요한 법률지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지?






<이젠 기업 Risk Management Insight (RMI) 가 문제다>(가제)


1. 서론


1) 법적 분쟁이 증가하는 상황

2) 법무팀을 위한 조언

3) 법무팀 활용법


2. 계약분쟁


가. 서론

나. 계약 지식

다. 계약서 중요 조항의 분석


3. 내용증명(분쟁초기대응)

4. 채권회수

5. 민사소송 대응법


6. 기업형사

가. 기업내 빈발 형사

나. 직장 내 성희롱


7. 회사법 관련

가. 회사법 기본지식

나. 주총과 이사회


8. 지재권

가. 부정경쟁

나. 저작권

다. 영업비밀

라. 전직금지


9. 공정거래법상 담합/ 하도급법

10. 결어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09.30 21:01

조우성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지름길을 택하라

 

 

이미 벽돌을 납품한 지가 1년이나 지났는데 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직원들 월급이 벌써 2달 째 밀려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벽돌제조업체인 K벽돌의 백사장.

중소 건설업체인 D건설에 벽돌을 납품하고도 계속 그 대금을 받지 못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1년 동안이나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나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뭐 특별한 사정이라기 보다는. 일단 준다니까 믿었죠. 그런데 6개월이 경과하니까 불안해서 여기 저기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알아봤는데,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 해도 1심 판결을 얻는 데 까지 최소 6-7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제라도 법적 조치를 진행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지금 백사장 입장에서 일반적인 소송절차를 밟는다면 이런 순서가 된다.

 

D사를 상대로 물품대금 청구소송 제기 법원에서 재판 진행 1심 판결을 받을 때까지 최소한 6-7개월 소요 1심 판결에서 승소할 경우 가집행을 통해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음.

 

, 아무리 빨리 진행한다 하더라도 정식재판의 과정을 거치면 6-7개월이 걸릴 것이 뻔한데, 그 기간 동안 K벽돌이 그대로 유지될 지도 의문이었다.

 

이런 사건에서는 비상수단을 써야만 한다. 시간도 줄여야 하고, K 벽돌의 소송비용도 최소로 줄여야 한다. 나는 비상수단을 쓸만한 상황이 되는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백사장님, D건설을 상대로 좀 강한 수단을 써도 될까요? 앞으로 D건설과 거래하는 데 문제는 없겠습니까?”

 

앞으로 D건설하고는 거래 안합니다. 이렇게 신용이 없어서야. 그 동안 제가 D건설 담당자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가서 난동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을 듯해서 꾹 참고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강한 수단을 써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D건설의 심기를 건드려도 된다니 강한 수단을 써도 되겠군.

 

백사장님, D건설이 주로 공사를 담당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다시 말해서 D건설이 담당하는 공사 중 가장 큰 발주처가 어딘지 아십니까?”

 

“D건설은 한국도로공사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D건설로서는 한국도로공사와 같은 좋은 발주처를 갖고 있다는 것 때문에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요. 가서 보면 D건설은 한국도로공사에게는 꼼짝 못하더군요.”

 

오케이. 한국도로공사면 아주 좋아.

 

나는 백사장에게 제시했다.

 

사장님, 다른 변호사님들 말씀처럼 정상적인 소송방법으로 가면 6-7개월 정도의 기간에 소송비용만 1,000만 원 가량 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백사장님은 비상상황이므로 비상수단을 써보죠. 우리 의도대로만 잘 되면 일주일 내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백사장은 귀가 솔깃해졌다. 6-7개월 걸릴 사건이 일주일 만에 해결될 수 있다고? 더구나 변호사 비용도 크게 줄이면서?

 

 

 

 

 

 

나는 D건설을 상대로 통보서를 작성한 다음 내용증명 형태로 보내기로 했다. 통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작성했다.

 

발신인 : K벽돌 주식회사

대표이사 백 0 0

 

발신인 대리인 :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조 우 성

 

수신인 : D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한 0 0

 

1.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인은 발신인과 귀사 간의 물품대금 분쟁에 관한 법률업무를 위임받은 대리인입니다. 본 통보서를 발송하게 됨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3. 발신인은 귀사와 지난 2009. 5. 1. 벽돌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2009. 5. 30.까지 1억 원 상당의 벽돌을 귀사의 요청에 따라 공급완료했습니다.

 

4. 귀사는 벽돌 공급 완료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벽돌공급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의무일인 2009. 7. 30.로부터 1년이 경과한 2010. 8. 10.까지도 벽돌공급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5. 발신인은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귀사 담당자를 방문해서 물품대금지급을 요구했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그 지급을 미루고 있습니다.

 

6. 발신인 회사는 위 물품대금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발신인 회사와 같은 영세 업체로서는 1억 원이라는 자금은 회사의 존폐를 결정짓는 큰 금액입니다. 이에 발신인으로서는 더 이상 귀사의 협조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하여 법적 조치에 돌입하고자 합니다.

 

7. 귀사의 주 발주처가 한국도로공사인 점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귀사는 아마도 한국도로공사측에 대해 상당한 금액의 공사대금채권을 갖고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발신인은 귀사가 한국도로공사에 대해서 갖는 공사대금채권에 대해서 채권가압류를 진행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8. 발신인이 굳이 이런 사실을 미리 귀사에게 알려 드리는 이유는, 한국도로공사는 공기업으로서 자신의 거래처로 인해 채권가압류 등의 조치를 당하게 될 경우 담당자들이 귀사와 같은 거래처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귀사가 한국도로공사의 협력업체 지위를 박탈당할 우려도 있기에 귀사에게 미리 이런 사실을 알려 드리는 바이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통보서를 작성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고려했다.

 

첫째, K벽돌이 직접 D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D건설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최대한 변론을 진행한 후 시간을 끈 다음 판결에 따라 물품대금을 지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K벽돌은 공중분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K벽돌이 D건설을 직접 상대하는 방법은 현명하지 않기에 상대를 바꿔야 한다.

 

둘째, D건설은 K벽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판결에 따라 한참 뒤에 벽돌대금을 지급하면 된다. 하지만 D건설도 무서워하는 상대가 있으니 이는 바로 D건설이 주로 거래하는 한국도로공사이다. D건설의 가장 큰 매출처이자 발주처가 한국도로공사이기 때문에, D건설은 한국도로공사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한국도로공사를 끌어 들여야 한다.

 

셋째, K벽돌은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D건설의 재산에 대해서 가압류를 할 수 있는데, D건설이 한국도로공사에 대해서 공사를 하고 받을 대금채권(공사대금채권)에 가압류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K벽돌에게 좋은 점은, 그 가압류 사실이 한국도로공사에 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담당자는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이런 결정문을 받게 된다. 귀사(한국도로공사)D건설에게 줄 공사대금 중 1억 원에 해당하는 부분은 D건설에게 주지 말고 갖고 있으시오. 나중에 K벽돌이 받으러 갈 겁니다. 만약 이 결정문을 받고서도 귀사(한국도로공사)D건설에게 공사대금을 준다면 나중에 그 금액만큼 K벽돌에게 이중으로 지급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런 결정문을 받게 되면 한국도로공사 담당직원은 머리가 복잡해지고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넷째, 한국도로공사는 공기업이므로 이런 식의 타인간의 분쟁에 휘말리기를 싫어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한국도로공사 담당직원은 K벽돌 직원을 불러서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시오!”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한다.

 

다섯째, 결국 K벽돌은 이런 식으로 문제가 확대될 수 있음을 넌지시 D 건설측에 알리면서 K벽돌이 채권가압류를 하기 전에(좋은 말 할 때) 물품대금을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놀랍게도 내용증명을 보낸 후 사흘 만에, 그 동안 그렇게 K벽돌에서 연락을 취해도 안 만나주던 D건설의 담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백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D건설은 지금 또 다른 큰 공사건으로 한국도로공사에 대한 입찰을 준비 중인데, 만약 채권가압류 통지가 가게 되면 입찰에 상당한 타격이 입을 수가 있어서 절대 채권가압류를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밀린 공사대금 채권은 1달의 기간 동안 2회에 나누어 5,000만 원씩 지급할 것이라고 약속을 했다. 백사장은 내가 시키는 대로 못마땅한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어렵게 그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종결지었다.

 

이 분쟁을 해결하면서 내가 백사장에게 청구한 변호사 보수는 100만 원이었다. 상담하고 내용증명 작성하는데,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으므로, 그 정도 비용이면 적절했다.

 

백사장은 100만 원은 말이 안된다면서 300만 원을 입금하겠다고 했다. 기분 좋아서 더 주시겠다는데 굳이 안 받을 이유야...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어야 하며, 의뢰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솔루션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법적인 방법이 아니면서도, 가장 시간과 비용에 있어 효율적인 솔루션을 찾아냈을 때, 변호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09.23 14:50

소송에서 배우는 인생이야기 : 검사가 못 된 이유

 

 

나는 1991년에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2년간 연수생활을 거쳤다.

 

19921년간은 사법연수원에서 다양한 실무 교육을 받았고, 1993년은 법원, 검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정 기간 수습 과정을 거쳐야했다.

 

당시 나는 당연히 연수를 마치면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공무원 출신이셨기에 항상 입버릇처럼 우성이는 반드시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나 역시도 사회정의를 위해 신념을 가지고 불의와 맞서는 검사의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31월부터 4월말까지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판사시보(試補 ; 수습) 생활을 마치고, 19935월부터 8월말까지는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시보 생활이 예정되어 있었다.

 

 

 

부산지방검찰청에 출근하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몸담을 검찰을 미리 경험해 본다는 설레임을 갖고 마음이 들떴다.

 

검사님실에 배속을 받은 다음 작은 책상을 하나 놓고 거기서 검사님의 일을 보좌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직접 피의자들을 앞에 두고 경찰에서의 진술과정을 재확인한 다음 보완할 내용을 적어서 하나의 조서(피의자신문조서)를 꾸미는 것이다.

 

검사시보들에게는 복잡한 사건은 배당되지 않고 이미 경찰에서 자백한 사건, 경미한 사건들이 주로 배당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처음 맡은 사건은 소위 아리랑치기사건이었다.

 

대학생인 김00군은 19934023:30경 부산 북구 만덕동 000 주변에서,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 최00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지갑을 끄집어 내어 그 지갑 안에 있던 현금 5만 원을 절취했다는 것이 범죄사실의 요지였다.

 

이처럼 술 취해 정신이 혼미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속칭 아리랑치기’(절도)라고 한다. 만약 술에 취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 폭력을 행사하면 그 때부터는 속칭 퍽치기’(강도)가 된다.

 

김군은 마치 근처를 순찰하던 방범대원에게 적발되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이미 경찰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했기에 불구속으로 수사받는 중이었다.

 

김군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물어보았다. 사정이 참으로 딱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꽤 큰 수술비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밖에 없어서 현재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김군 뿐이었기에 김군은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근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 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했고, 그 피해자가 몸을 뒤척일 때 양복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일단 범죄사실에 대한 진술을 정리한 뒤, 김군의 딱한 사정을 최대한 자세히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했다.

 

그리고 김군이 현재 대학교에서 장학생이며,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은 내역도 알아내어 피의자신문조서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를 검사님께 검사 맡기 위해 보여 드렸더니 검사님께서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조시보님. 이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니라 변호인이 작성한 변론요지서 같습니다. 이 아래 부분은 전혀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지우세요.’라고 말씀하시고는 김군의 딱한 사정에 대해 기재한 부분을 지적하셨다.

 

 

사실 검사님의 말씀이 옳았다. 형사 사법 시스템의 구성요소인 판사, 검사, 변호사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검사는 범죄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과 입증을 해야 하고,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정상참작 사유를 최대한 주장해야 하며,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을 종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검사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변호사로서의 주장을 한 셈이다. 난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 사건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이었다.

 

 

직장인 박0019934021:45경 부산 중구 남포동 000번지 소재 포장마차에서 옆자리에 있던 피해자 길00(17, 고등학생)과 시비를 가리던 중 격분하여 위 피해자를 주먹으로 가격하여 안면부 타박상 등 전치 3주에 이르는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 범죄 사실이었다.

 

 

멀쩡한 직장인이 무슨 이유로 고등학생을 때렸을까 솔직히 한심한 생각이 들어 폭행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봤더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 날 박씨는 친구와 같이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옆자리에서 아주 시끄럽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피고 있던 길군을 보게 되었다. 장교출신인 박씨는 고등학생들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점잖게 어이, 학생들, 좀 조용히 하지?’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길군은 거참. 씨팔. 아저씨는 아저씨 일에나 신경쓰쇼!’라면서 대꾸했다.

 

 

생각지도 않은 반응에 화가 난 박씨는 일어나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너 학생아냐?’라고 소리쳤고, 길군은 학생이든 뭐든, 당신이 연필 한자루라도 사 줬소?’라면서 대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밀치다가 박씨가 날린 주먹이 길군의 뺨을 강타하고 말았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 그 상황에 처했다면 나도 아마 박씨와 비슷하게 행동했으리라.

 

역시 피의자신문조서에 공을 들였다. 일단 범죄사실은 간단하게 쓰고, 당시 왜 박씨가 길군을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 정말 설득력있게 써 내려갔다. 아마 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읽다보면 누구라도 박씨의 편이 될 수밖에 없도록.

 

울분에 찬 눈빛으로 피의자신문조서의 검토 결과를 기다리는 나에게 검사님은 다시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다.

 

허허, 조시보님. 그럼 조시보님 의견은 피의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겁니까? 아니 검사가 그런 입장을 취하면 도대체 법질서는 누가 지킵니까? 이 아래 부분은 피의자신문조서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부분이니 싹 지우십시오.'

 

그렇게 나의 검사시보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게 시작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문득 , 검사란 직업이 내 적성에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됐다.

 

내 동기들 중에는 피의자가 아무리 자기 사정을 이야기해도 그건 당신 사정이고, 어차피 잘못은 저질렀잖소? 그 사정은 변호인에게 이야기하세요.’라면서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범죄행위와 그 사람이 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4개월의 검사시보 생활을 마치면서 내린 결론은 내 적성이 검찰이란 조직과는 잘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검찰에서 일을 한다면 나도 힘들 것이고, 검찰이란 조직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 나는 검찰이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했고, 내가 수습생활을 했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997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도울 우()’, ‘정성 성()’으로 지어주시면서 당신 손주가 평생 남들을 돕는 마음으로 살 것을 바라셨다고 한다. 결국 이름 따라 가게 된 건가.

 

변호사로서 16년간 생활하면서 가장 뿌듯한 점은, 기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면서(물론 일정한 대가를 받지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에게 맡는 일이 있으며, 이를 거슬러 살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04.28 18:49

조우성변호사의 에토스이야기 : 사람들은 왜 소송을 할까?


분류 : Ethos > Empathy

What is ETHOS?

매력있는 사람, 존경받는 사람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Ethos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Ethos의 구성요소를 머릿글자를 따서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1) E - Empathy(공감능력)

2) TH - Thoughtful (사려깊은, 지혜로운)

3) O - Objective (객관적인, 냉철한, 목표지향적인)

4) S - Self Improvement (자기계발)


물론 소송을 하는 이유 중 가장 다수를 차지 하는 것은 역시 '돈' 문제이다.

그러나 '돈' 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와 같은 '감정싸움' 소송에서는 돈 보다는 어떻게든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 넣고
괴로움을 주려는 것에 목적이 있게 된다.

그런 소송을 의뢰하는 분들이 항상 쓰시는 말이 있다.

"내가 말이죠, 이 사건 승소해서 돈 받으면 전부 사회단체에 기부하거나
 불쌍한 사람들 줄 겁니다!"


물론 위 호언장담이 모두 현실로 이행되지는 않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억하심정을 갖게 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은 독한 마음을 품고 어떻게든 복수하려 하니


절대 사람에게 억하심정을 갖게 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점일 것입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04.16 00:40


사람의 욕심이란 참...


내가 담당하는 수많은 사건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비롯된 것들이 많다. 특히 대부분의 형사사건은, 그 사람의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고,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끝까지 상대방을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투서나 고소를 하게 되어 결국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우린 100억 정도 갖고 있으면 정말 뿌듯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100억 갖고 있는 사람은 200억 벌려고, 사업을 확장하고 
무리하게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려 든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 많이 했다.
 

채근담을 보다 보면, 이러한 사람의 무리한 욕심을 자제하라는 좋은 글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인용해 보고자 한다.


#1.


사나운 짐승을 죽이기는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굴복시키기 어려우며

계곡을 채우긴 쉬워도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2.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면

그 거짓된 술수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3.


명예와 부귀가 헛되이 사라지는 길을

직접 따라가 그 끝을 지켜보면 탐욕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재난과 빈곤함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직접 따라가 그 유래를 따져보면

원망하는 마음이 저절로 사라진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제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메기 같은 물고기라..."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나의 지향점이 헛된 욕심과 무리한 욕망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한번씩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헛된 욕심과 무리한 욕망은

결국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니..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