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0 01:44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21) 송양지인과 갈택이어


■ 인용


춘추시대 송나라와 정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정나라가 싸움에 밀리기시작하자 다급해진 정나라는,이웃인 초나라로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얼마 후 초나라의 대군이 위기에 빠진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몰려왔다.

이에 송나라는 몰려오는 초나라 군사들을 막기 위해 강변에 철통같은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하자 <목이(目夷)가 송나라의 <양공(襄公)>에게

 

" 대왕! 지금이 기회입니다. 저들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일제히 공격하면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목이>의 말에 <양공>은 고개를 저었다.

 

"자고로 군자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게 아니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것은 비급한 짓이다."

 

"대왕 저들은 초나라 대군입니다. 정면으로 싸우면 우리가 집니다."

"군자는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저들이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자."

 

결국 송나라는 초나라를 쳐부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초나라의 군사들은 강을 다 건넜으나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

 

<목이>가 어서 공격 하자고 하였으나 <양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싸움이란 서로 똑같은 조건에서 해야 정당한 것이다."


마침내 전투준비를 마친 초나라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송나라 군대는 패하고 양공은 심한 부상까지 당했다. 


양공의 이런 행동에 대해 송나라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러나 양공은 여전히 ‘군자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법이다. 전열을 갖추지 못했으면 공격의 북을 울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점잔을 뺐다. 그러자 목이가 이렇게 비난했다.


“전쟁은 승리로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공께서는 실제와는 거리가 먼 헛소리만 늘어놓는 것입니까? 공의 말씀대로라면 차라리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지 뭐 하러 전쟁은 한답니까?”


- 사마천 사기 ‘송미자세가’ 중 - 






■ 생각


바로 이 고사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생각하지 않고 적에게 인정을 베푸는 행위를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성어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송미자세가’에서 이를 평가하면서 양공을 두둔하고 있다.


“송양공이 홍수에서 패하긴 했지만 어떤 군자는 매우 칭찬할 만하다고 했다. 당시 중원의 국가들이 예의가 없는 것을 가슴아파하면서 양공의 예의와 겸양이 정신을 칭찬한 것이다.”


사실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는 모든 리더들이 갖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지혜롭게 대처한 문공의 사례가 있다.


송 양공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 살았던 진(晉) 문공(文公)이 있었다.

그는 기원전 632년 성복(城濮) 전투에서 초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주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공은 강을 건너고 있는 초나라 군대에 대한 대책을 신하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 때 선진(先軫)이란 대신은 초나라가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했고, 호언(狐偃)은 그것은 대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반대했다. 


문공은 선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초나라 군대를 공격해 대승했다. 


귀국 후 문공은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뜻밖에도 선진이 아닌 호언이 1등상을 받았다.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자 문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성복의 전투를 말하자면 호언은 과인에게 신의를 잃지 말라고 권했고 선진은 ‘군대는 오직 이기는 것이 최고다’고 말했다. 과인은 선진의 말을 받아들여 승리를 얻었지만 그것은 한 때의 유리한 방법이고, 호언은 만세의 공덕을 말한 것이다. 한 때의 유리함이 어찌 만세의 공덕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 이 부분에 대해서 ‘회남자’, ‘여씨춘추’라는 책에서는 다소 달리 설명하고 있다.


호언이 말하길,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사람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잠시 후, 문공은 이옹 李壅의 생각을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반대하였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여기서 갈택이어(竭澤而漁)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갈택이어의 뜻은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l


춘추시대는 명분과 의리 그리고 신의가 여전히 큰 미덕인 시대였다. 현실에서 이런 미덕들이 온전히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문공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한 셈이다. 돋보이는 리더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10 00:51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20) 금의야행(錦衣夜行) 


■ 인용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는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 


우선 유방이 살려 둔 3세 황제 자영을 죽여 버렸다(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그 불을 안주삼아 미녀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려 하자 참모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벼온 싸움터를 벗어나 많은 재보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이 간했다. 


"관중(關中 : 함양을 중심으로 하는 분지)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요충지인데다 땅도 비옥하옵니다. 하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시고 천하를 호령하시오소서."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황량한 폐허일 뿐이었다. 그보다 하루바삐 고향으로 돌아가 성공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항우는 동쪽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항우에게 함양에 정착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안 한생은 항우 앞을 물러나자 이렇게 말했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沐?]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워 놓은 것[沐猴而冠]처럼 지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대로군." 


이 말을 전해 들은 항우는 크게 노하여 당장 한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 



■ 생각


금의야행(錦衣夜行)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 


곧 ① 아무 보람 없는 행동의 비유. ② 입신 출세(立身出世)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음의 비유. 


항우의 미성숙하고 정치감각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유명한 대목이다.


“젠장, 멋지게 출세해 놓고 고향에 가서 폼 한번 잡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재미란 말요? 어깨 힘주는 맛도 있어야지, 암 그럼...”






금의환향(錦衣還鄕 ; 비단 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 하고 싶었던 항우.

하지만 그의 판단은 그 다음 행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항우의 이러한 낭만적인 성격은 그 후에도 어려차례 목격된다.


비단 옷을 입고 

아는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뽐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가 보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10 00:06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 (19) 사마천이 평가하는 항우 


개인적인 능력이나 집안배경 등에 비추어 봤을 때, 도저히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유방이 승리했고, 항우는 패배했다.


항우의 스타트는 순조로왔다.


그는 용맹함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단 3년 만에 제후들을 복종시켰다. 자신을 패왕이라 부르게 했던바, 천하가 곧 항우의 수중에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나 항우의 문제는 정치를 몰랐다는 점, 측근들을 믿지 않았다는 점, 무엇보다 대세의 흐름과 민심의 동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또 그의 치기어린 마음도 한 몫했다. 오로지 고향 사람들에게 으스대기 위해 관중을 버리고 자신의 고국인 초나라와 가까운 곳에 도읍을 정한 것도 대세를 거스른 결정적 실책이었다.


항우는 자기과시가 심했다.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항우를 평가했다.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움으로 인해, 과거의 행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그저 힘만으로 천하를 굴복시키려다 5년 만에 나라를 망치고 스스로의 몸도 망쳤다.”


“그러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패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애꿎은 하늘을 원망했다.”


유방의 행동은 다소 음험하고 기분 나쁜 측면이 있었지만 끈질겼던 반면, 항우는 통쾌했지만 단순했다.


유방의 카리스마는 위기상황에서도 포기를 몰랐지만, 항우의 카리스마는 결정적인 순간에 맥없이 무너졌다.


항후가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 아끼는 애첩 우희(우미인)를 데리고 와서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그대를 어찌할까?”라는 죽음의 이별노래를 부른 것은, 항우의 기질이 궁극적으로는 낭만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리더의 카리스마는 현실이지 낭만이 아니다.


사마천은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장군이 아니라 큰 전쟁에서 승리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항우가 가졌던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09 23:26

조우성변호사의 멘토 사마천 : (18) 항우와 유방의 성격비교



사마천 사기 곳곳에는 항우와 유방의 성격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이 따로 진시황을 보았을 때 내뱉었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는 ‘항우본기’와 ‘고조본기’에 나온다.


#1


언젠가 진시황이 초나라 수도로 시찰을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혈기왕성했던 항우는 시황의 행차를 보고는 서슴없이 “조만간 내가 저 놈을 대신하리라”라며 씩씩거렸다. 곁에 있던 숙부 항량은 이 말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다.


#2


유방 역시 무명 시절 진시황의 시찰 행렬을 본 적이 있다. 이 때 그는 ‘오호라! 대장부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라며 감탄했다.



용맹하고 강한 개성의 항우와 연약하면서도 어딘가 음험한 유방의 성격을 사마천은 잘 대비시키고 있다.


강하면 부러지기 쉬운 법.


대나무처럼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아는 유연성이라는 장점이 유방에겐 있었던 것이다.






너무 눈에 힘을 주며 살고 있진 않은가.

또는 내 경쟁자의 성공에 너무 배아파하거나 분기탱천하지 않는가?


‘오호라~ 멋지군. 저 정도는 돼야지. 암’이라고 말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을 수 있는 기개를 가져 보는 건 어떨지?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09 22:17
2012.12.09 22:06


조우성변호사의 ETHOS 이야기 : 분노를 표출하는 것의 위험성


홀로 가만히 있다보면
예전의 부끄러웠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그 대부분은 순간적인 화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외부로 표출했던 때입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이를 강하게 표출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감정이 절제되지 않을 때는

사람을 만나지도 말고 전화도 하지말고
분노의 손가락으로 이메일을 쓰지도 말고
일단 책 한권 들고 잠수하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지혜라는 것을 느낍니다.



  • 그리고 또 하나. 제 경험상으로는 '좀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주변에 대해 화를 잘 내더군요. 본인 스스로 '굴'한 위치에 있을 때는 조심스러워져서 그런지 외부적으로 화도 잘 못내구요.
  • 조우성 그런 의미에서 '화를 외부적으로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잠깐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일종의 시그널로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07 02:54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14) 덕망(德望)과 덕망(德網)


■ 인용


탕왕이 교외로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기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탕왕은 이를 보고 “허! 한꺼번에 다 잡으려고 하다니”하면서, 그를 비키라고 하고는 그물 중 세 면의 그물을 치우게 했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그 쪽으로 가게 하소서.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만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빌게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후들은 “탕왕의 덕이 지극하구나. 그 덕이 금수(禽獸)에까지 이르렀으니”라며 감탄했다.


- 殷 本紀 중 - 






■ 생각


여기서의 그물은 ‘통치의 그물’이라는 중의적(重意的)으로 사용되었다.


정치를 비유할 때 작은 물고기조차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촘촘하게, 그리고 온 사방에 걸쳐 그물을 치는 것은 백성들을 고달프게 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도 상실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사마천은 넉넉한 덕과 여유를 갖추고 꼭 문제가 될 부분에 한해서만 간섭과 규제(그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통치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런 리더가 치는 그물은 덕으로 친 그물, 덕망(德網)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치고 있는 망이 너무 촘촘할 뿐만 아니라 온 사방을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그물의 '벡터값'을 돌아볼 일...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1.30 21:17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11) 천하삼분



C사의 김대표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김대표가 몸담고 있는 업계 상황을 보자면 A사와 B사가 시장을 각 45%, 40%씩 지배하고 있었고, C사는 15%의 지배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B사측에서 인수합병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C사를 일정한 조건에 인수할테니 B사와 C사를 합친 다음 이를 통해 A사를 뛰어넘어 보자는 제의였다.


업계 3위의 입지가 사실 고달픈 면이 많았기에 김대표는 이 기회에 C사를 B사에 넘기는 것도 방법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B사 사장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었다. 관련 업계 사장단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호의를 베푸는 B사 사장의 모습에서 A사 사장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느꼈던 김대표였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있었고, 시장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동안 힘들게 버텨온 업계 3위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고민하고 있던 김대표에게 나는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천하삼분지계를 인용했다.


--------------


천하삼분(天下三分)


천하를 세 개로 나눈다는 뜻으로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3위 국가가 1, 2위와는 독립적인 영역과 세력을 구축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지위를 구축해 가는 생존전략을 의미한다.


통상 천하삼분지계라고 하면 제갈량이 유비에게 제안했던 내용을 떠올리는데 그 원조는 유방과 항우간에 치열한 천하통일 싸움을 하던 초한지 시절에 유방의 휘하에 있던 한신과 그의 참모 괴통의 일화로부터 비롯된다.


항우와 유방 사이에 격렬한 초한전(楚漢戰)이 진행되던 기원전 3세기 말, 당시 한신은 유방의 휘하에 있었다.


한신은 유방의 대장군으로서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운다. 한신의 등장은 항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어 온 초한전의 양상을 일시에 뒤바꿔 놓았다. 


특히 유방은 항우와 겨룬 팽성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 때 한신이 구원군(救援軍)을 이끌고 나타나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한신은 유방의 명을 받아 제(齊)나라를 정복한 뒤 제 나라를 봉지(封地)로 하사받아 제나라의 임시왕(假王)이 되었다. 


이 때 제(齊)나라 출신의 괴통(蒯徹)이라는 사람이 한신을 찾아왔다. 


괴통은 천하 대권(大權)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힘과 무력을 지닌 사람이 바로 한신임을 알고 유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건설한 다음 천하를 차지하여 황제가 되라고 한신을 설득한다. 그 과정을 잠시 살펴본다. 


괴통의 설득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1) 항우는 현재 경수와 삭수 사이에서 어려움에 빠졌고, 3년 동안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2) 유방은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공(鞏)과 낙 땅에서 험준한 산과 강에 의지해 여러 차례 싸웠으나, 아주 조그만 전공(戰功)도 세우지 못했다. 군대는 기세가 꺾였고, 싸움에서 패배해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형양에서 패배하고, 성고에서 상처를 입고 드디어 원(宛)과 섭(葉) 사이로 도망니다. 


(3) 결국 현재 항우나 유방은 그 누구도 절대적인 강자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4) 현재 항우와 유방의 운명은 장군(한신)에게 달려 있다.


(5) 장군이 항우를 위해 싸우면 항우가 이길 것이고, 유방을 위해 싸우면 유방이 이길 것이다. 


(6) 장군이 내 계책을 받아준다면 유방과 항우를 존속시켜 놓은 채천하를 삼분(三分)하여 솥의 발처럼 세워 놓겠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7) 장군은 수많은 병사를 발판으로 제(齊)나라에 의지하여 연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키고 아무도 차지하고 있지 않은 땅으로 진출해 항우와 유방의 후방을 견제하라. 또 백성들의 소원을 좇아 서쪽으로 나아가 유방과 항우의 싸움을 중단시키고 병사들의 생명을 구해주시라. 그러면 천하는 마치 바람처럼 달려와 장군에게 호응할 것이다. 


괴통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저는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화(禍)를 당하고, 때를 만났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이에 대해 한신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1) 유방은 나를 매우 잘 대해준다. 유방은 자신의 수레에 나를 태워주고, 자신의 옷을 나에게 입혀 주고, 자신의 음식을 나에게 먹여준다. 


(2) 나는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 사람과 우환(憂患)을 함께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 사람과 근심을 함께 하고, 남의 음식을 먹은 자는 그 사람이 하는 큰일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고 들었다. 내가 어떻게 나만의 이익을 위해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괴통은 그런 일시적인 감정과 작은 은혜에 휘둘리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한신은 괴통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괴통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유방을 배신하지 못했다. 결국 한신은 자신의 공적(功績)을 믿고, 한나라 왕 유방이 자신에게 봉지(封地)로 하사한 제(齊)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 


- 사마천 사기 회음후 열전 중 - 


그 뒤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고 결국 한신을 역모 혐의로 처단했다(이 과정에서 토사구팽이란 말이 나왔다).


----------


사실 김대표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그 정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C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함에 있어 괴통이 한신에게 했던 천하삼분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참고해 볼 필요는 있다. 최종 선택은 김대표의 몫이겠지만.



☞ 시간관계상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다음 기회에...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1.22 13:01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8) 굴묘편시(掘墓鞭屍)

 

“전 끝을 볼 겁니다. 변호사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동업자에 대한 횡령죄 형사고소를 했지만 무혐의처분(죄가 없다는 결정)을 받은 박사장. 사실 이 고소는 법리상으로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박사장은 도저히 분을 이기지 못했다.

 

특정 사업아이템을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가 동업자가 어느 순간 살며시 독립적으로 그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업자가 그렇게 한 데에는 박사장의 우유부단함과 능력부족이 큰 몫을 차지했다. 어차피 시장경제의 논리상 동업자가 그렇게 한 것을 두고 비난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박사장은 동업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상당기간 동업자에 의해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형사적으로는 고소를 제기했는데, 지방검찰청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자 이에 대한 이의절차(항고)를 제기했다. 이의절차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될 것이 뻔한데 박사장은 그럴 경우 다시 이의(재항고)를 하자면서 전의를 불태운다.

 

아울러 민사적으로 동업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청했다. 사실 딱히 손해를 봤다고 보기 어렵지만 정신적 피해액을 5억 원으로 정해서 청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5억 원을 청구하자면 법원에 내는 인지대(印紙代)만 해도 상당한데 금액에는 상관하지 말고 제출해 달라고 한다.

 

나아가 박사장은 예전에 동업자가 세금을 탈루한 것 같다면서 국세청에 증여세 포탈을 이유로 동업자에 대한 탈세신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왠만하면 국세청 신고는 하지 말 것을 권유했으나, 박사장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업자가 현재 거래 중인 00 홈쇼핑에게는 동업자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에 대해서 내용증명을 띄우겠다고 했다. 나는 그 역시 잘못하면 명예훼손의 역공(逆攻)을 당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줬으나 박사장은 자신이 다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이런 의뢰인이 한 둘이 아니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도저히 상대방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철저히 상대를 파괴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

 

굴묘편시(掘墓鞭屍)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복수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를 빼놓을 수 없다. 오자서는 복수의 화신이지만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강직한 인물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3억 중국 인구 중에 10억 명이 그를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김영수 교수님).

 

 

 

1)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 오사는 태자 건의 스승이었다.

 

2) 초나라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가 오사를 시기하여 평왕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그 참언을 듣고 오사를 죽이려 한다. 오사를 옥에 가둔 평왕은 후환을 없애려 그의 두 아들을 부르라시킨다. “아들을 오게 하면 살려 주겠다”는 꾐에 오사는 이렇게 말한다.

 

3) “큰아들(상)은 효자라 부르면 올 것이고, 둘째 아들(자서)은 야무진 아이라 오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장남은 부름대로 오고, 오자서는 “가봤자 세 부자가 모두 죽을 것”이라며 도주한다.

 

4) 오나라로 망명한 자서는 오왕 합려를 보좌하여 강국으로 키운 뒤 초나라를 함락시킨다.

 

5) 드디어 복수의 때가 왔으나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평왕은 생전에 이미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6)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찾아낸 뒤 시신을 파내어 쇠채찍으로 300번 내려침으로써 분을 풀었다. 이 일을 두고 친구인 신포서가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이 있느냐”고 나무라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에 역행하는 수밖에 없다”(일모도원 : 日暮途遠)고 답한다. 여기서 일모도원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7) 그것이 또다른 업(業)이 되었을까. 오자서는 훗날 합려의 아들 부차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죽으면 눈을 도려내 문 위에 걸어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당부한 뒤 자결했다. 비록 선대의 원(怨)은 풀었다지만 저 또한 원을 품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 사마천 사기, 오자서(伍子胥) 열전 -

 

 

때로는 복수를 향한 일념이 삶을 지탱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친 복수심이나 적개감으 스스로의 삶을 피폐하고 힘들게 한다. 어느 순간 그 마음을, 그 사람을 놓아줘야 할 때가 있다.

 

반면, 남에게 원한을 사면 그 사람은 기를 쓰고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 특히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절대 남에게 원한을 사면 안된다. 복수심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 원(源)인지는 수차례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낀 바이다.

 

 

● 참고자료 1)

 

조선시대 때 관을 파내 주검을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거는 끔찍한 형벌인 부관참시는 연산군 시대에 성행했다. 무오사화 때 ‘조의제문’을 지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한 게 대표적인 예다.

 

 

 

● 참고자료 2)

 

한국기업 락앤락의 김준일 회장은 2007년 중국 쑤저우(蘇州)에 생산법인을 세웠다. 마침 그 지역이 오자서가 살았던 오나라 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오자서 동상을 공장 안에 세우기로 했다. 현지 관공서에 알아보니 동상을 설치하려면 ‘오씨 종친회’와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오씨 종친회에 일을 맡겼는데, 제막식 날 14개나 되는 신문·방송사들이 회사로 몰려왔다.

 

기자들이 “왜 하필 오자서 동상을 공장 안에 세우려 하느냐”고 물었다. 김 회장 답변은 이랬다. “평소 존경하던 위인이다. 또 중국이 앞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 물질주의 폐해를 겪게 될 텐데, 오자서와 같은 강직한 인물을 사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락앤락 또한 그런 올곧은 기준을 가지려고 한다.”

다음날 중국 현지 언론들은 ‘외국기업 공장 최초로 중국 현인의 동상을 세웠다’며 김 회장과 락앤락을 집중 조명했다. 의도치 않게 동상 제작비의 몇 배를 뛰어넘는 마케팅효과를 거뒀다. 이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1.22 01:52

조우성 변호사의 멘토 사마천(7) 富貴多士 貧賤寡友(부귀다사 빈천과우)

 

26개월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경제사범이 되어 징역형을 마치고 나온 P는 이를 악물었다.

한 때 P가 몇 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때는 주위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어떻게든 P의 눈에 들려고 굽신거리기까지.

 

그런데 사기 및 횡령이 문제가 되어 본인은 구속되고 회사가 풍비박산나자 그 동안 자기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P를 떠났다.

 

26개월간. P는 감방 안에서 이를 갈았다.

 

내가 나가면 반드시 재기하리라. 재기해서 내 곁을 떠난 모든 이들에게 복수하리라. 특히 내가 도움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겐 무릎 꿇고 사과하도록 만들어 주리라. 그 복수의 힘이 P를 버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富貴多士 貧賤寡友(부귀다사 빈천과우)

부귀할 때는 선비가 많고 빈천할 때는 친구가 적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맹상군이 군주의 신임을 받고 부귀가 극성했을 때는 휘하에 식객이 수천 명 있었으나, 군주의 신임을 잃어버린 이후에는 그 많던 식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맹상군은 식객 풍환의 덕에 다시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관련 고사성어가 바로 교토삼굴’), 맹상군이 이렇게 복직을 하자 예전의 식객들이 다시 맹상군에게 몰려들었다. 이를 본 맹상군은 화가 나서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내가 하루 아침에 쫓겨나는 것을 식객들이 보고는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났소. 이제 풍환 선생 덕분에 복직하였는데 예전의 식객들이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본단 말이오. 만약 나를 다시 보려하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크게 욕을 보일 것이오.”

 

그러자 풍환이 이를 말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사물에는 반드시 이르는 것이 있고, 일에는 진실로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는데 군께서는 이를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맹상군은 화가 난 목소리로 나는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모르겠소.”라고 퉁명스레 답했다.

 

그러자 풍환은 말을 이었다.

 

生者必有死(생자필유사)物之必至也(물지필지야), 富貴多士貧賤이면 寡友事之固然也(사지고연야)

살아 있는 자가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이 반드시 이르는 바요, 부귀할 때 선비가 많고 빈천할 때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이 진실로 그렇게 되는 바인 것입니다(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군이 직위를 잃고 빈객이 모두 떠나간 것을 두고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원망한다면 이는 선비들이 다시 공에게 돌아오는 길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원컨데 군께서는 옛날처럼 객을 대우하여 주십시요.”

 

그 말을 들은 맹상군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풍환에게 두 번 절하며 말하길

 

삼가 그 명에 따르겠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어찌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 사기, 맹상군열전 중에서 -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

산전수전 다 겪은 노() 정객(政客)은 분노와 복수심에 불탄 주군에게 이렇게 조언을 한다.

 

화를 내지 마십시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 인간사의 모습입니다.”

 

사마천은 이 사례를 통해 이익에 초연하기 힘든 것이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라는 것을, 따라서 이런 모습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죽비로 한 대 맞은 기분이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