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Legal 오딧세이 

제1편 : 을의 반격, 하도급법 



고단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 (주)일성건업 김덕배 사장을 처음 만난 내 느낌이었다.


(주)일성건업은 직원 수 30명 규모의 방화섀시, 스태킹도어를 제조, 납품하는 중소업체인데, 빌라 15세대를 시공하는 (주)대륙건설로부터 섀시와 도어 공급을 하도급 받아 그 제조와 납품을 담당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단가를 너무 후려치더군요. 어디서 업계표준이라고 자료를 갖고 와서는 무조건 그 표준단가보다 낮게 납품해 달라는 거예요. 그렇게는 어렵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자기네들이 몇 건의 공사를 더 계획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관계를 가면 서로 좋지 않겠냐면서 회유하길래... 사실 요즘 납품처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주)대륙건설은 이처럼 단가는 싸게 낮출 것을 강요하면서도 오히려 납기는 통상적인 경우보다 2개월이나 빨리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섀시, 도어 업체를 늦게 선정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한 것이다. 김 사장은 ‘그래, 사업은 길게 봐야 해. 이렇게 신세를 입히면 저쪽도 미안한 마음에 다음에는 뭔가 돌아오는 것이 있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촉박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사장은 영업 담당 박 부장으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대륙측에서 섀시, 도어 업체를 바꿀 거라는 소문이 있는데요? 딴 업체가 리베이트를 준다면서 접근을 한다고 합니다. 사장님, 우리 가만히 있다가 웃기는 꼴 당하는 거 아닙니까?”


김 사장은 일말의 불안감이 들긴 했지만, 단가도 시중가보다 낮춰주고 납기까지 단축시켜 준 자신들을 대륙측에서 그렇게 ‘팽(烹)’ 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주)일성건업은 계약서에 정해진 납기일인 2014. 1. 10.에 약정된 물량의 섀시와 도어를 공사 현장에 납품했다. 계약서 상으로는 대륙이 납품을 받은 날로부터 10일 내에 검수결과를 통지해야 하는데, 그 날이 지나도록 대륙측으로부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로부터 1달이 지난 2014. 2. 9.경 대륙으로부터 공문이 도착했다.


공문 내용은 ‘ ① 일성건업이 납품한 섀시와 도어는 당초 기준에 많이 미흡해서 검수결과 불합격되었으며, ② 이런 품질로는 더 이상 계약을 계속할 수 없으므로 계약을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그 공문을 받고는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섀시나 도어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문이 제대로 안 닫히거나 다른 기능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대륙측에 가서 따졌더니 현장 소장은 ‘창틀 색깔이 약간 빛바래 보인다’, ‘문을 닫을 때 약간의 떨림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트집을 잡더라구요.”


김 사장은 그 부분이 정녕 문제가 된다면 얼마든지 하자보수를 통해 보완해 주겠다고 했지만 대륙은 자신들로서는 공기(工期)가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니 다른 업체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짱을 놓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륙측과 접촉하던 다른 업체에게 이 계약 건을 밀어 주기 위해 대륙측이 공연한 트집을 잡는 것이라는 게 김 사장의 추측이었다.


‘음, 전형적인 하도급법 위반 사건이군.’


나는 김 사장에게 질문했다.

“사장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나는 의뢰인들로부터 사연을 듣고 나면 항상 ‘의뢰인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의뢰인들은 분노, 억울함, 배신감 때문에 변호사를 찾아온다. 하지만 분쟁을 해결하려면 의뢰인이 이 분쟁에서 얻으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목표요? 목표라... 이 계약을 계속 가져가는 겁니다. 파기되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대륙은 우리를 잘라버리고 다른 업체와 다시 계약을 할 게 뻔합니다.”

“일성의 목표는 대륙이 이 계약을 함부로 파기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계약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지요?”

“네. 변호사님.”


대륙이 보여준 행태는 전형적인 소위 ‘갑질’이다. 계약서 상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는 실제 거래를 해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갑질’이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 천만의 말씀. 거래관계, 특히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불합리한 갑질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바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줄여서 ‘하도급법’이다.


“사장님, 우선, 대륙이 일성에게 한 행동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알려 드릴께요.”

나는 법전에서 하도급법 부분을 펼친 다음 화이트 보드에 하나씩 써내려갔다.


우선, 대륙은 일성을 부당하게 압박해서 하도급대금을 낮게 결정했다. 이는 하도급법 제4조 위반이다.


“하도급법 제4조 

①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의 위탁을 하는 경우 부당하게 목적물등과 같거나 유사한 것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이하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이라 한다)하거나 하도급받도록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원사업자의 행위는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으로 본다

5호 :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하여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


다음으로 대륙은 일성으로부터 납품받은 후 계약서에 따른 10일의 기간이 한참 경과 한 30일이 지나서야 제품이 불량이라면서 그 납품을 거부했다.

그런데 하도급법 제9조에 따르면 검수는 목적물을 수령한 날로부터 10일 내에 해야 하고 이 기간 내에 통지하지 않으면 검수에 합격한 것으로 본다. 결국 대륙은 이를 어긴 것이므로 이 부분은 하도급법 제9조 위반이다.


“하도급법 제9조

②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는 수급사업자로부터 목적물등을 수령한 날부터 10일 이내에 검사 결과를 수급사업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하며, 이 기간 내에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검사에 합격한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대륙은 정당한 이유 없이 납품계약 자체를 취소하려 하는 것인바, 이는 하도급법 제8조 위반이다.


“하도급법 제8조 

① 원사업자는 제조 등의 위탁을 한 후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용역위탁 가운데 역무의 공급을 위탁한 경우에는 제2호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1. 제조 등의 위탁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2. 목적물등의 납품 등에 대한 수령 또는 인수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행위”


“김 사장님, 보시다시피 대륙은 지금 하도급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상황입니다.”


“그러네요. 하도급법이라는 게 참 우리 같은 업자들에겐 좋은 법이군요. 하도급법을 위반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 겁니까?”


(주)일성건업은 하도급법 위반을 이유로 대륙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신고를 받고 조사한 결과 하도급법 위반이 확인되면 ① 시정명령, ② 하도급대금의 2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징금 부과, ③ 상습위반자에 대해서는 벌점을 부과하여 향후 입찰참가자격제한,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영업정지 등의 조치, ④ 하도급 대금의 2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표자에게 벌금 부과(형사벌) 등이 가해질 수 있다. 특히 관급공사를 주로 하는 업체라면 벌점이 부과되어 향후 입찰참가자격에 제한을  받게 되면 회사의 존폐에까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변호사님,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공정거래위원회에 바로 신고하면 되나요?”


“아닙니다. 원래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무서운 법입니다. 바로 신고하는 것보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서 겁을 주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만약 (주)일성건업이 더 이상 대륙과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이것 저것 따질 것 없이 바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주)일성건업은 대륙을 은근히 압박해서 납품계약을 함부로 파기하지 못하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점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륙과 같은 중소 공사업체들은 하도급법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법규를 위반했을 때 자신들이 어느 정도로 불이익을 입는지를 잘 모른 채 눈앞의 이익만 좇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준엄하게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면 상황이 급호전될 수 있다. 


나는 일성을 대리하여 대륙에 보내는 통고서를 썼다. 통고서의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귀사와 일성은 섀시, 도어 납품계약을 체결하였고, 일성은 그 계약에 따른 이행을 완료했다.


2) 그런데 귀사는 일성으로부터 물품을 납품받은 날로부터 30일이나 경과한 시점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하게 트집을 잡으며 수령을 거절하고 계약을 파기하고자 한다.


3) 또한 귀사는 일성과 최초 계약 당시 향후 여러 건의 계약을 체결해 줄 것이라는 점을 기화로 시중의 일반 단가보다 납품 단가를 부당하게 저가로 체결하도록 강요했다.


4) 귀사의 일련의 행동은 하도급법 제4, 8, 9조 위반행위에 해당한다. 


5) 일성은 귀사와 이 문제 관련해서 법적인 다툼까지 가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귀사가 부당하게 계약을 파기한다면 일성으로서는 귀사의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


6) 공정거래위원회가 신고를 받으면 이번 거래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귀사의 거래관행을 모두 문제 삼을 수 있으며, 그 결과 귀사는 시정명령, 과징금, 벌점부과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영업정지 등의 조치, 대표자에 대한 벌금부과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7) 귀사는 본 통고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 이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것임을 확약하는 문서를 제출하라.


8)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일성으로서는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일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내용증명은 (주)일성건업의 강한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변호사 명의로 보내기로 했다.


“이 통보서를 받은 후 대륙은 아마 아예 더 강하게 나오거나 아니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나올 겁니다. 어떻게 나오든 그에 따라서 다시 대응하면 되니 연락이 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그 통보서를 발송하고 4일이 경과한 날, 김 사장은 대륙측 공무담당 최 이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 김 사장님,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현장팀에서 제대로 검수도 하지 않고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본사에 보고해서 본사 관리팀이 하자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일성 측에 공문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검수해 보니 별 문제가 없더군요. 그냥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혹시라도 업무처리 과정에 언짢은 부분이 있으시다면 이해해 주시구요.”


김 사장은 내가 설명한 대로 답변을 했다.

“아, 그런 오해가 있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륙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하하하.”

김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후로 김 사장은 대륙측과 2 건의 계약을 더 진행할 수 있었다. 대륙측으로서는 자신들이 단가를 후려친 것이 하도급법 위반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혹시라도 일성이 이 부분을 문제삼을까봐 2건의 계약을 더 진행시켜 주었던 것이다.

일성으로서는 자칫하면 아예 기존 계약에서 잘려 나갈 수 있었던 위기를 내용증명 한 통으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일성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하도급법’이다.


‘아는 을이 갑이다.’


하도급법 분쟁 문의  

기업분쟁연구소 info@cdri.co.kr / 02-598-3660 

                     http://www.cdri.co.kr/hj/







  1. 로스쿨생 2018.01.11 11:50 신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입니다 선생님. 본 사이트에 게시된 글들의 질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본 글에서 느껴지는 선생님의 의뢰인에 대한 친절함(조문설명 등)과 의뢰받는 방법(목표제시 등)의 명쾌함, 그리고 후속처리에서의 센스(답변귀뜸 등)를 보고 있노라면 놀라우면서 동시에 과연 내가 저런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 좌절스럽기도 합니다. 여하간 너무 좋은 글들이 많고 훌륭한 변호사를 만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변호사님 번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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