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로에세이 - 나를 스토킹하는 남자가 있어요


내가 홍세리(가명, 32세)씨를 알게 된 것은 직장인들의 마케팅 모임에 협상론 관련 강의를 하러 간 자리에서였다.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2시간 강의를 마친 후 뒷풀이 자리에서 모 치과에서 고객관리를 맡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수수한 차림에 왠지 수줍어 하는 듯한 표정.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며칠 뒤. 긴히 상담할 일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어요.”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남기고 또 병원 앞에서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미행을 해서 알아냈는지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세리씨에게 이성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남자분 아닐까요?”

“저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정도가 심해져서요. 불안해요.”

“현실적으로 어떤 위협을 가한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만나주지 않으면 아마도...”


단순히 누군가를 따라다닌다고 해서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일단 안심을 시키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달라고 하고 그녀를 돌려보냈다.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어느 밤, 전화가 울렸다. 그녀였다. 밤 11시 반.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변호사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사무실입니다. 무슨 일인지요?”

“그 사람이 제 집 앞에서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것 같은데, 무서워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아까 문자가 와서, 오늘은 꼭 자신을 만나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마침 회식이라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럼 무작정 집앞에서 기다린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까 밤 11시쯤 문자가 왔는데 ‘오늘은 끝장을 낼 겁니다. 이판사판입니다.’면서 문자를 보내 온 겁니다.”


자칫하면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일단 112에 신고를 하세요. 아직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고 하시면 경찰관이 달려 오실 겁니다.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연락주시구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로 전화가 더 오지는 않았다. 나는 내심 궁금했지만 문제가 해결됐으니 전화가 없겠거니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말씀하신대로 112에 신고했더니 바로 경찰관이 와주셨어요. 그래서 같이 갔더니 멀리서 저희들을 보고 그 남자는 사라져버렸어요.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쩌나요?”

“그게 좀 걱정입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고 있을까요?”


“접근금지가처분이란 걸 해볼 수는 있습니다. 일단 그 가처분을 받아두면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제가 정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2주일 쯤 지난 시점.


“변호사님, 도저히 안되겠어요. 접근금지가처분이란 걸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 남자는 그 뒤로도 저를 계속 스토킹하고 위협합니다.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준비해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아. 결국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그럼 그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네. 그런데 아마, 변호사님도 그 남자를 보셨을 겁니다.”

“네? 누구?”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하여튼 다음에 만나서 정식으로 위임계약을 하고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진행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이 일을 잊고 지냈는데, 나는 내 대학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좀 골치아픈 문제가 생겼는데, 상담을 받아봤으면 합니다. 시간 좀 내 주세요.”


그 후배(정훈)는 바로 얼마 전 내가 참석했던 마케팅 모임의 운영자였다.


후배와 같이 온 사람은 최현우(가명, 35세)씨. 모 중견기업의 마케팅팀 차장이었다.

현우씨는 남자인 내가 봐도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선배님, 모임을 운영하다보니 이런 일도 생깁니다. 저희 모임 멤버들간의 문제라 어떻게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하지만 더 이상 뒀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후배의 말에 이어 최현우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내용인 즉 이랬다


최현우씨는 마케팅 모임에서 한 여성을 알게 됐다. 몇 번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알게 되었고 호감도 갖게 되었다.


두 번 정도 따로 만나서 영화도 보고 차도 마셨는데, 그녀가 계속 황당한 말들을 해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의 오너고 자신이 무남독녀인데, 앞으로 그 기업을 물려받아야 해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자기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많은데 모두 재산을 보고 그러는 것 같다 등등. 어떻게 보면 자랑 비슷한 건데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니 거북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뒤로는 제가 슬슬 피했죠.”


현우씨가 연락을 피하자 그녀는 계속 문자를 남기고 사전 연락도 없이 현우씨 회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뭐, 남녀간에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문제는 그 여성분이 우리 모임 멤버들에게 묘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겁니다.”


후배가 끼어들었다.


“묘한 소문?”


“네, 제가 그녀를 스토킹 한다는 둥,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한다는 둥 하는 소문입니다. 그녀가 제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는데, 그녀가 언급하는 간접적인 자료를 종합하면 우리 모임 멤버들은 그 남자가 저라는 것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거든요. 제게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현우씨가 보내준 문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를 무시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 줄 거야.“


나는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에 눈이 갔다.

010-5634-****

“혹시 현우씨가 말하는 그녀가 홍세리씨?”


내가 이 말을 하자 두 사람 모두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이 놀라워했다.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 마음 한켠이 찌릿했다.


나는 최근에 홍세리씨가 다른 상담건이 있어서 통화를 했기에 그 번호가 눈에 익었었다고 둘러댔다.

일단 후배와 현우씨에게는 내가 따로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세리씨에게 전화를 했다.


“세리씨, 그 때 말씀하시던 사건. 진행하셔야죠? 오늘 저녁에 마침 제가 시간이 되니 사무실에 한 번 오시죠.”

세리씨는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제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요. 사건을 진행하든 말든 일단 오늘 만나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그날 밤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그녀와 나. 많이 지쳐보였고 왠지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녀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최현우씨가 다녀갔습니다.”


“네? 왜요?”

“세리씨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후배 정훈이도 같이 왔습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최현우씨를 좀 나무랐습니다. 사람이 좀 경솔해 보이더군요. 두 분간에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신만 상처를 입은 듯해서 제가 그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어디까지 말하던가요?”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을 하다보면 좀 예측이 됩니다. 제가 볼 때는 현우씨가 세리씨 마음을 세세하게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더군요. 그게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녀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세리씨, 그동안 좀 많이 힘들었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제게 전화를 주셔서 이것 저것 상담도 하시고. 감사합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실 겁니다. 이제 마음에서 그를 보내시구요. 예전의 당당했던 세리씨 모습으로 돌아가시죠. 저도 돕겠습니다.”

내가 너무 주제넘는 간섭을 하나 싶어 조심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정신이 좀 드네요.”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지만 표정은 밝았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놓는 듯 했다.


누군가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열병(熱病).

하지만 그 마음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비뚤어진 집착과 자기파괴적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세리씨는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그 위기를 잘 극복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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