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변호사의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2권 

권리 위에 잠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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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벤처기업이 아이디어 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작은 벤처기업이기에 아이디어 만이 유일한 무기가 된다. 자본도 없고 설비도 없지 않은가.


중소기업 진흥공단에서 무료로 개최하는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세미나’에 다녀왔다. 별 기대 없이 갔다. 하지만 2시간 가량 전문변호사라는 사람의 설명을 들었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법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그 변호사도 알겠지만 그래도 나 같은 ‘을’이 ‘갑’에 대항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좋은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다. 강의를 마치고 명함을 받아두었다. 하지만 큰 로펌의 변호사를 내가 무슨 수로 부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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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서 꿈틀거리던 아이디어가 조금씩 구체화됐다. 

‘위치기반을 활용한 소비자행동패턴의 분석 및 CRM 구축방법’


대학 때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배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케팅 방법론이다. 전반적인 비즈니스 플로우를 만들고 어떻게 IT와 엮을 수 있을지를 정리했다.


원래 아이디어를 보호하려면 특허 출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주위에 알아보니 특허를 출원하고 중간에 이를 보정하며 나중에 등록까지 가려면 몇 백만 원이 들었다. 아직 내 수준에 몇 백만 원을 특허비용으로 쓰기란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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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미나 진행할 때 변호사가 가르쳐준 것이 있다. 굳이 특허가 아니라도 영업비밀로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세미나에서 받았던 교재를 뒤적여봤다.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면 일단 내부적으로 영업비밀로서의 모양을 갖추라...

좋다. 일단 이 양반이 시키는 대로 해보자.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페이퍼로 정리하고 이를 영업비밀보호센터(http://tradesecret.or.kr/main.do)에 등록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했는데. 음, 등록 비용이 몇 만원 수준이네?


정리된 아이디어를 영업비밀 형태로 정리했다.







지금 직원이라고 해봐야 고작 2명.

하지만 그 직원들에게도 이 영업비밀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세미나에서 받아 온 ‘영업비밀서약서’를 출력해서 직원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영업비밀을 준수하며 나중에 퇴직한 이후에도 이 영업비밀을 함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내용.

막상 이런 걸 쓰라고 하면 직원들은 찜찜해 하지만 그래도 나로선 이게 밑천이니 어쩔 수 없다. 널리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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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이런 서비스는 없다. 위치기반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소개됐지만 내가 구상하는 이 정도의 정교한 서비스는 아직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를 제대로 알아봐 줄 곳만 있으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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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선배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 역시 선배다.

내가 구상한 이 서비스는 통신사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는 회사만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이 서비스를 제안해 볼 만한 곳으로는 국내에 3-4개 뿐이다. 그 중 업계 1등인 M사의 제휴기획팀이 선배에 의해 연결된 것이다. 


친구들이 걱정을 한다. 나 같은 벤처가 대기업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PT할 경우 사실상 모두 뺏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문제다.


이제부터는 진검승부다.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이 무기를 여기 저기 싸구려처럼 팔고 다닐 수는 없다. 구걸하지도 않겠다. 선배가 어렵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에 배운 대로 내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장치를 하고서 그들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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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사 제휴기획팀 과장과 대리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선배가 소개를 했음에도 ‘그래, 대체 어떤 아이디어인지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건들거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마음 상할 내가 아니다.


나는 세미나 때 샘플로 받은 NDA(비밀유지약정)를 들이 밀었다.






‘이건 또 뭐야?’라는 황당한 표정의 그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제게는 워낙 중요한 아이디어라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야 해서 그런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NDA에는 오늘 공개하는 내용은 우리 회사의 영업비밀이라는 점,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지적재산권 역시 우리 회사에 귀속된다는 점, 이를 동의 없이 함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과장은 대리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언제 우리가 이런 걸 쓰면서까지 회의 한 적 있었나?”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대리는 “자신감 있고 좋아 보이는 데요. 한번 들어보죠 뭐.”라고 과장을 설득하더니 내가 제시한 NDA에 휘리릭 서명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목례를 하고 준비해 간 PT자료 출력물을 건넨 후 30분 동안 상세하게 설명했다. 과장과 대리는 어떤 부분에선 심각하게 어떤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설명을 들었다.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검토하고 연락드리죠.”

과장은 아까 처음과는 달리 웃으면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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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몇 번이고 먼저 전화를 해보려 했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사업을 자존심으로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심호흡을 하고 그 날 만났던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내 이름을 이야기하니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다가는 “아...네. 저희들이 진작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사실 대표님이 제안하신 내용은 아주 이상적이긴 한데 실제 필드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것이 내부 검토 결론입니다. 이거 어쩌죠? 다음에 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라고 답하고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흠... 실제 필드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느 부분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설사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해도 조금씩 고쳐나가면 될 터인데.

너희들이 옥구슬을 옥구슬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괴로워할 일은 아니다. 좋다. 나는 계속 확신을 갖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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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쯤 지난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는데 친구 녀석이 전화를 했다.


“야, A통신사에서 새롭게 서비스한다고 광고하는 걸 봤는데, 그거 네가 준비하던 서비스 아냐? 거기랑 계약한 거야?”


이건 무슨 소리?


나는 급히 인터넷에 접속해서 A통신사의 새로운 고객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살펴봤다. 어? 내가 M사에 제안한 서비스와 거의 동일했다. M사가 A사의 마케팅 업무를 대행한다는 것은 업계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다면 M사는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A사에게 제안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요 것 봐라? 일이 재미있어 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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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판단이 들 경우 너무 서둘러 공격을 하진 말기 바랍니다. 좀 더 숙성(熟成)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략상 유효하답니다. 너무 초기에 공격을 하게 되면 ‘그래, 우리 이 서비스 안 할래’라면서 발을 뺄 수도 있거든요. 상대가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그 변호사가 하던 말이 기억났다.

좋다. 내가 내 자식을 몰라 보겠는가. A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새로운 CRM 서비스는 내 영업비밀과 거의 유사하다. 조금만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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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A사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서비스 진행 상황을 살폈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그 서비스의 CF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1,000명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 행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 올라왔다. 아울러 A통신사는 이 서비스를 하반기 주력 서비스로 정했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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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M사와 A사 모두에게 간략한 통보서를 썼다. 문안은 일단 인터넷을 보고 대략 참고했다.


우선 M사에 보낸 내용은 이러하다.


1) 지금 A사에서 진행하는 000 서비스는 2012년 2월 3일 발신인이 귀사 000과장, 000대리에게 PT하고 자료를 건네줬던 발신인 회사의 영업비밀 내용과 아주 유사하다.


2) 발신인은 당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그 내용을 영업비밀보호센터(http://tradesecret.or.kr/main.do)에 등록해 놓았으며, 회사 직원들에게도 영업비밀서약서를 받아두는 등 그 비밀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3) 귀사 000과장, 000대리에게 서비스 내용을 공개할 때에도 별첨과 같은 NDA를 제공해서 이에 서명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귀사 직원들은 발신인이 그 날 발표한 서비스 내용은 발신인 회사의 영업비밀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4) 더욱이 그 날 발신인이 귀사 직원에게 제공한 PT 출력물에는 곳곳에 “본 제안서 상의 비즈니스 모델은 당사의 영업비밀로서 보호되고 있음을 이 제안서를 받아보는 분들은 충분히 인지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는 귀사 직원들에게 확인해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5) 결국 귀사는 발신인 회사의 영업비밀을 임의로 유출한 것이므로 이에 따른 민, 형사상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발신인 회사는 A사의 서비스 중단을 A사에게 정식으로 요청할 것이다.


그리고 A사에는 M사에게 보낸 위 통보서를 첨부하고는


1)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귀사는 발신인 회사의 영업비밀을 발신인 회사의 허락없이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2) 이는 명백한 영업비밀행위이므로 당장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

3)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민, 형사상의 제재조치를 가할 수 있음을 양지하기 바란다




는 내용으로 통보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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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에 연락이 왔다. 나는 M사에서 먼저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통신사인 A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을 원만히 푸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가능하면 라이센스로 문제를 풀자고 했다. 나는 라이센스로 문제를 푸는 것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았다.


“저희 서비스는 그대로 진행하구요, 이 과정에서 저희들이 대표님께 일정한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말이지요. 서로 머리를 맞대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흐흐.. 윈윈. 아름다운 얘기다. 내가 원하는 것이거든.

나는 “알겠습니다. 제 변호사님을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변호사가 있다고 하니 상대방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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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변호사님이시죠? 기억 못하시겠지요? 예전에 중소기업 진흥공단에서 강의 들었던 사람입니다. A사와 라이센스 계약 협상도 하고 계약서도 써야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경험이 없어서 말이죠. 네. 다음 주에 만나자고 합니다. 이 사건을 좀 맡아 주시면 어떨까요? 네. 그렇죠. 네. 그럼 내일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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