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2 00:43

조우성변호사의 내 얘기를 들어줄 단한사람이 있다면 2권 중

'이혼방지 전문가'



“선배님, 저희 형님 일인데 바쁘시겠지만 꼭 상담 한 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후배 요청으로 상담을 하게 된 최희철씨.


G기공에서 7년간 근무했고 마지막 3년 간은 그 회사의 이사로 재직하다가 오너와의 불화로 사표를 내고 그 뒤로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그. G기공은 H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운전자금을 계속 대출받아 사용했고, 최희철씨는 임원으로서 G기공의 대출채무에 연대보증을 섰으며 매년 대출 연장시에도 서명을 했다.


최희철씨가 G기공에 사표를 낸 것은 3년 전. 그런데 최근 G기공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자 그 채무의 연대보증인인 최희철씨에게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H상호저축은행은  최희철씨 명의 아파트에 가압류를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재산이라고는 달랑 집 하나 밖에 없는데, 여기에 가압류까지 당하고 나면 애들 결혼은 어떻게 시켜야 할지 눈 앞이 캄캄합니다. 그 잘난 임원한답시고 보증만 잔뜩 서고...”


이사로 재직할 당시 최희철씨가 파악한 G기공의 대출규모는 5억 원 정도였는데, 자신이 퇴직한 이후 대출 규모가 증가하여 이제는 15억 원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가 변호사 두 분께 여쭤봤는데, 제가 연대보증한 것이 맞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는 힘들다고 하더군요. 유일한 방법은 제가 와이프와 이혼을 하는 수밖에는...”


“이혼요?”


“네, 애들 엄마에겐 제가 잘 설명을 해야지요. 이혼을 한다고 하고 제가 애들 엄마 앞으로 재산분할 명목으로 집의 지분 1/2를 넘겨주는 방법을 취하면 그나마 일부라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던데요.”

“아... 그 방법은 좀...”





남편이 많은 채무를 져서 채권자로부터 독촉을 받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해서 가장(假裝) 이혼을 시도하는 부부들이 많다. 실제 빚 때문에 부부사이의 신뢰가 깨져서 이혼을 한다면 모르지만, 단순히 채권자들의 빚 독촉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이혼을 하려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았다.


첫째, 형식상 가장 이혼을 한다고 하지만 일단 법적으로 이혼 수속을 밟고 따로 살게 되면 실질적으로도 서로의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혼을 하든 안하든 남편의 채무는 남편만 책임을 질뿐이지 부인이 당연히 남편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셋째, 오히려 가장 이혼을 하면서 재산을 일부라도 부인 앞으로 빼돌리면 채권자로서는 ‘강제집행면탈죄’라는 형사적인 책임을 채무자에게 물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남편은 형사고소까지 당하게 되어 더 힘들게 된다.


나는 이런 사정을 최희철씨에게 설명하면서 이혼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었다. 최희철씨는 내 말에 반색을 했다. “아. 이혼을 하나 안하나 똑같다는 말씀이죠?” 최희철씨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변호사가 ‘이혼이 최선’이라고 설명해 주니 마음이 착잡했던 것이다.


“네, 이혼이라는 미봉책이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알아봅시다. 잠깐만요...”


나는 몇 가지 사항을 최희철씨에게 물어 보았다.


“이사직을 그만 둘 당시 혹시 상호저축은행에 더 이상 연대보증책임 지지 않는다고 통보하셨나요?”

“일단 제가 좀 찜찜해서 사표를 내면서 상호저축은행에 그 사실을 통보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런 일방적인 통보로는 효력이 없다더군요.”


“혹시 그 때 연대보증 서명했던 대출서류는 갖고 있지 않으시나요?”

“제가 상호저축은행에 가서 받아올 수 있습니다.”

“일단 그 서류일체를 가지고 오십시오.”


나는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며칠 뒤 최희철씨가 대출서류를 갖고 왔다.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나는 빙그레 웃었다.


“사장님. 방법이 있습니다.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회사의 임원 자격에서 보증을 선 사람이, 그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예전의 보증책임을 그대로 지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복잡한 법적 문제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임원의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책임을 지지만, 예외적으로 ‘특정 채무가 아닌 회사의 계속된 채무 일체에 대해서 보증책임을 지는 경우’, 즉 포괄근보증일 경우에는 임원이 회사의 임원직을 그만두면서 보증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을 금융기관에 통보했을 때에는 보증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사장님이 G기공 이사직을 그만두면서 H상호저축은행에 통보를 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대출서류를 보니 채무 금액이 특정이 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특정에 불과하고 사실상 ‘장래에 G기공이 부담하는 채무 일체’에 대해서 연대보증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포괄근보증에 해당합니다. 포괄근보증일 경우에는 임원직에서 물러날 경우 통보를 통해 연대보증의 해지가 가능합니다.”


최희철씨는 의외의 실마리에 기뻐했다.


“그럼 소송을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소송을 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일단 제가 상호저축은행측에 내용증명을 보내보겠습니다.”


나는 최희철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H상호저축은행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① 최희철씨가 G기공의 대출채무에 연대보증한 것은 G기공의 임원자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 


② 최희철씨가 G기공의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자신은 더 이상 연대보증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점을 통보한 바 있다. 


③ 최희철씨가 연대보증한 G기공의 귀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채무는 ‘포괄근보증’이다. 


④ 포괄근보증의 경우 임원의 지위에서 연대보증한 보증인은 그 지위에서 물러나면서 해지통보를 할 경우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을 추궁하거나 재산에 대한 가압류 등을 할 경우에는 금융감독기관에 진정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 뒤 상호저축은행 담당자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법적인 설명을 더 자세하게 해주었더니 더 이상 최희철씨에게는 책임을 추궁할 실익이 없겠다면서 절차를 종결시키겠다고 알려왔다.


이 기쁜 소식을 최희철씨에게 알려주었더니 며칠 후 부인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솔직히 제 실수로 이혼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암울했습니다. 와이프에게도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구요. 그런데 이렇게 내용증명으로 문제가 해결되니 정말...”


“이거 정말 약소합니다만, 저희 부부 성의입니다. 곧 설날이기도 하고. 사양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최희철씨의 부인은 내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나중에 열어보니 백화점 상품권 10만원권 10장이었다.





오호~

설날을 앞두고 있으니 어머니께 5장, 와이프에게 5장을 건네면 아주 적절할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최희철씨를 보낸 후 몇 시간 뒤에 전화를 받았다.

K였다.


“조변호사, 설 대목 전이라 바쁘지? 근데 말야 괜찮은 Deal이 내게 왔어, 꼭 한번 검토해 주면 좋겠는데. 한 30분이면 돼.”


오, K. 이번엔 또 무슨 Deal일까.


이 친구와의 인연이 떠올랐다. 


변호사 생활 시작한 지 3년 만에 만났던 사회친구. 미국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IT업체가 큰 기업에 인수합병되면서 큰 자금을 마련했고, 그 자금을 들고 한국으로 와서 미국과의 다양한 거래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K를 알게 되어 다양한 계약 검토를 해 주었다.

인물 좋고 성격 좋은 K.


거기다 성공한 청년사업가이기도 했기에 항상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결혼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미모를 갖춘 전문직 여성과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던 K가 올인(all in)했던 투자건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서 갑자기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다니... 여기저기서 채권자들이 들이 닥치는 통에 엄청나게 시달렸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친구라 그런지 결코 사람들에게 꿀리기 싫어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꼭 호텔에서 만나고 커피 값을 내도 본인이 내야 했다. 남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지만 내게는 속내를 다 이야기하는 K.


“와이프가 고생하지 뭐. 와이프 신용카드 7개를 만들었어. 그 중 6개를 내가 쓰면서 돌려막기 하고 있지. 한 방이면 되는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K.


한 번 큰 물에서 놀아봤던 친구라서 그런지 손을 대는 Deal들은 하나 같이 금액도 크고 내용도 좀 황당했다. 친구로서의 내 바램은 작은 Deal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올라갔으면 했는데, K는 한 방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뭔가를 노렸다.


K가 그런 식으로 본의 아닌 헛발질을 한 지도 어언 2년이 접어 들어가는 시점이었다. 그 큰 빚더미를 안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과연 오늘은 어떤 Deal을 가지고 날 찾아오는 걸까?


“니콜라스 2세가 누군지 알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야. 볼세비키 혁명 때문에 그 일가족은 살해되거나 추방됐거든. 그런데 니콜라이 2세는 엄청난 부자였고, 그 친척들과 신하들이 니콜라스 2세의 막대한 금과 보물들을 빼돌렸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지. 왕국을 언젠가는 다시 재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 어쨌든 그 막대한 금과 보물들을 몽골 지역 곳곳에 매장해 뒀다고 해. 그리고 나중에 이를 찾을 수 있기 위해 보물지도를 비밀리에 만들어서 보관했고, 그 중에 몇 개가 발견됐어.”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K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이 좀 황당할 거야. 하지만 실제 캐나다 업체가 몽골에서 금광을 발견한 일이 신문에 보도가 됐다구. 여기 봐봐. 이번에 내 파트너가 발견한 보물지도에 따르면 아직 아무도 발굴하지 못한 곳에 3군데나 표시가 되어 있다는 거야. 몽골정부로부터 금광채굴 독점권을 따 내면 대박이야. 우리 광물자원공사 쪽에도 선을 대놨어. 네가 변호사로서 우리가 뭘 체크해봐야 하는지, 그리고 관련 계약서들을 좀 살펴봐주면 좋겠어. 그리고 가능하면 몽골 쪽 로펌도 한번 알아봐주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이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K가 워낙 신이 나서 설명했기에 야박하게 자르기가 힘들었다. 일단 자료를 받아두고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K를 보내려다가 K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어떻든 재기하려고 발버둥치는 K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문서 파일을 열고 편지를 썼다.

궁서체 14포인트로 예쁘게. 


“친애하는 친구 K.


나는 아직도 널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낸 스토리는 내게도 큰 귀감이 되었어.

지금은 다소 힘들고 외롭겠지만

난 널 믿는다.

넌 반드시 예전의, 아니 예전 모습보다 더 멋지게 재기할 거니까.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란다.


언제나 너를 믿는 친구 우성”


유치할 수도 있지만 왠지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편지를 출력해서 봉투에 넣고, 아까 최희철씨로부터 받은 상품권 10장을 그 봉투에 같이 넣었다.


회의실에서 기다리던 K에게 봉투를 건넸다.


“어? 이게 뭐냐?”


“연애편지일까봐? 설인데 제수씨에게 선물 좀 사드리라구. 체면 좀 세워야지. 안 그래?”


“야, 뭐 이런 걸 주고 그러냐.”


항상 남에게 퍼주기만 하던 K로서는 남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이 많이 어색했던 것 같다.


그 후 K로부터 더 이상 몽골 금광 프로젝트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사이에 K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예전에 K에게 신세를 졌던 후배가 좋은 Deal을 갖고 왔고, K는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그 Deal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그리고 연이어 2-3개의 M&A Deal을 성공시키면서 불과 짧은 시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K의 활약상을 신문을 통해 계속 지켜보면서 흐뭇해 했다.


그 해 추석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K가 전화를 걸어왔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는데 당장 사무실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이런 도깨비 같은...


사무실 앞으로 나가보니 기사 딸린 자가용 앞에서 폼을 잡고 서 있었다. 

“야, 조우성이! 오랜만이지? 연락 못해 미안하다.”

그러더니 잠깐 같이 걷자고 했다.


“내가 진짜 진짜 너에게 고마워할 일이 있거든. 그런데 말야. 좀 폼 나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참았다. 뭔 얘긴지 궁금하지 않냐?”



몽골 금광 건으로 나를 만나러 온 그 당시, K 와이프는 K에게 이혼 이야기를 2-3번 꺼낸 상황이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 허황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K의 모습에 큰 실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몰리다보니 K는 더더욱 큰 한방을 찾아 불나방처럼 뛰어 다녔던 것이고.


내가 준 편지와 상품권. K는 내 친구가 주더라면서 그 편지와 상품권을 와이프에게 내놓았다. K의 와이프는 내 편지를 보고는 한참을 말없이 있더니 “당신 친구도 이렇게 당신을 믿어주는데 내가... 와이프인 내가... 당신을 안믿어 주면 안되겠어요. 미안했어요 그동안.”라고 말했다.

K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가 준 편지를 자기 컴퓨터 옆에 떡 하니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완벽한 와이프 입막음용이었다.


“친구야. 그 편지 아직까지 붙어 있어. 그리고 미안한 건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갈 땐 네 이름을 팔곤 해. 넌 우리 와이프에겐 보증수표거든. 하하하. 고마워.”


그리고는 흰 봉투 하나를 내 주머니에 쿡 찔러 넣었다.


“친구야. 제수씨랑 애들 맛있는 거 사주고 나머지는 비자금 해라! 이게 내 방식인 거 알지? 추석 잘 쇠고!”


아, 나의 궁서체 편지가 그렇게 큰 역할을 했다니. 

K가 주머니에 찔러 준 봉투에 든 현금을 세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


K는 그 후로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전처럼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잊을만 하면 불쑥 불쑥 전화를 걸어 온다.


그러고 보니 7년 전 설날, 나는 두 커플의 이혼 위기를 막았던 거로구나. 이 정도면 복 받지 않을까.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