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2권 중

'나이스 캐취'


“변호사님, 이 정도면 충분히 고소꺼리가 되지요?”


우리 법률사무소 김 사무장의 후배인 박진수씨(가명). 아래층에 사는 최광출씨(가명)와 언쟁이 붙었고 그 과정에서 멱살을 잡히고 밀침을 당했다는 것을 이유로 박진수씨를 고소하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여기 진단서도 발부받았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내 놓는 진단서에는 전치 1주를 요하는 어깨 타박상을 입었다는 내용이 기재되었다. 부상의 정도는 경미했지만 의뢰인이 워낙 흥분했기에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박진수씨와 최광출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00주공 아파트 00동 5층과 4층에 사는 이웃으로, 박진수씨는 가전제품 영업사원, 최광출씨는 00자동차 부품 하청공장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현장근로자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은 층간소음 때문. 박진수씨에게는 2명의 아들(6세, 4세)이 있는데 그 또래의 아이들이 늘상 그렇듯이 가만히 앉아있는 때가 없다. 소파를 휙휙 타 넘기도 하고 무술을 한답시고 거실에서 덤블링을 하는 일이 다반사. 아래층에 사는 최광출씨는 몇 차례 인터폰을 통해 항의를 했다.


“물론 저희 아이들이 좀 소란스러운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공동생활 하다보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잖습니까. 그리고 우리 애들은 낮에만 떠들지 밤에는 조용하다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광출씨가 3교대 근무를 하는 것이 문제를 악화시킨 것 같았다. 최광출씨는 정오(12시)쯤 퇴근해서 식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저녁 7시쯤 출근을 하는 날이 많다보니 오후시간에는 집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그 시간에 박진수씨의 아이들은 끓어오르는 남아(男兒)의 정기(精氣)를 마구 발산해야만 했으니.


어느 주말 저녁 8시쯤 초인종이 울려서 박진수씨가 나가보니 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서 있었다.

“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겁니까? 내가 한두 번 항의한 것도 아닌데...”

최광출씨였다. 키는 180cm가 넘어 보이고 반팔 티셔츠가 터져나갈 듯한 우람한 이두박근의 소유자. 박진수씨는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뒤에서 애들이 보고 있는데 밀릴 수야 없지.





“우리 애들이 뭐가 그렇게 시끄럽다는 말입니까? 너무 유별나신 거 아닙니까?”

“내가 3교대 근무 때문에 낮에 잠을 자야 하는데, 얼마나 위에서 쿵쾅거리는지 아십니까?”

“애들은 좀 뛰면서 놀아야지요. 3교대 근무라는 특수한 사정은 댁 사정이고...”

“뭐요?”


화가 난 최광출씨는 박진수씨의 멱살을 잡았다. 최광출씨보다 키가 훨씬 작은 박진수씨는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이거 당장 안 놔요? 이러면 내가... 내가... 가만히 안 있을겁니다.”

“어쩔 건데? 어쩔 건데? 응?”


최광출씨는 거칠게 멱살을 풀었고, 박진수씨는 뒤로 나둥그러졌다. 


“이런 무식하고 힘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혼이 좀 나야 합니다. 변호사님, 이 정도면 충분히 고소할 수 있지요? 네? 더욱이 그 사람은 아마츄어 복싱선수 출신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도 아니고 복싱선수라면 죄가 더 무겁게 되지 않나요?”


솔직히 이웃 간의 싸움이고 상처도 큰 것이 아니어서 이 정도 일을 가지고 형사고소를 한다는 것이 영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의뢰인이 워낙 화가 나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요건에 맞춘 고소장을 작성해 주었다. 그 후 박진수씨는 경찰서에 가서 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그로부터 몇 일 뒤에 최광출씨도 경찰에 불려가서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에서도 웬만하면 합의(최광출씨가 약간의 치료비를 부담하고 사과하는 방식)하고 고소를 취하하라고 권유했는데, 최광출씨는 ‘내가 왜 치료비를 내야 하나? 오히려 그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에 대해 정신적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박진수씨는 ‘나는 배상을 원치 않는다. 법적으로 엄벌에 치해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시간을 좀 줄 테니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쌍방이 노력해 보세요.’라면서 일단 사건 진행을 중단시켜 놓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박진수씨는 두어 번 우리 사무실을 방문해서 “진정서를 써서라도 사건을 좀 더 빨리, 그리고 강하게 처리해 달라고 조치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고, 나는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사건을 소개한 김사무장은 내게 미안한 듯 “생각보다 너무 까탈스러운데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변호사 입장에서도 좀 감당하기 힘든 분들이 있는데 박진수씨도 그런 범주에 속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박진수씨는 다시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 사무실을 찾았다. 헉... 또 무슨 일?


“이 미친 놈이 제게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나는 흥분해 있는 박진수씨로부터 소장을 넘겨 받아 살펴보았다. 원고는 최광출, 피고는 박진수. 원고는 피고 아들이 계속 층간소음을 내는 것 때문에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함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기에 이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1,000만 원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장의 전반적인 체계나 내용이 지극히 조잡한 것으로 봐서 최광출씨가 여기 저기 내용을 보고 조합해서 본인이 작성한 듯 했다.


“좋아요. 좋아! 이젠 정면승부입니다. 변호사님. 이 민사소송건도 맡아 주십시오. 아예 이 민사소송에 제가 폭행당한 것을 포함시켜서 역으로 손해배상 청구해 주십시오. 그게 가능하죠? 반대 소송인가 뭔가가 있죠?”

“아, 네. 반소(反訴)라는 제도가 있긴 합니다.”

“잘 됐네요. 그럼 반소를 제기하고 제 손해배상으로는 2,000만 원을 요청해주십시오.”

“2,000만 원요? 그렇게 하려면 근거가 필요한데...”

“그 근거는 제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든요...”


아... 이웃 간의 일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기업체 사건처럼 제대로 된 변호사 보수를 받고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야말로 계륵(鷄肋)과 같은 사건.


피고는 민사 소장을 받은 날로부터 1달 이내에 법원에 답변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나는 박진수 씨 사건 답변서 작성을 계속 미루고 있다가 제출마감일 1주일을 남겨 두고 서둘러 김사무장에게 박진수씨와의 미팅을 잡아 달라고 했다. 박진수씨와 전화 통화를 한 뒤 내게 달려 온 김사무장.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변호사님. 우리 이 사건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뭐? 진짜? 아니 어떻게?”


며칠 전, 그 날도 최광출씨는 3교대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낮 12시 반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아파트 위쪽에서 시끄러운 어린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자기의 숙면을 방해하는 5층의 그 두 녀석들이었다. 베란다에서 칼싸움을 하고 있는데 가관이었다.


최광출씨는 ‘오늘도 제대로 자기는 글렀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급히 위를 쳐다보니 5층에서 아이 하나가 그대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위에선 아이 엄마가 아파트가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왕년에 복싱선수 출신인 최광출씨. 머리 속으로 빠른 계산을 했다. 그대로 서서 받으면 나나 아이 뼈가 부러질 수 있으니 일단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받은 다음 자연스럽게 바닥에 넘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는 최대한 보호하면서...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예전 상대방의 펀치를 피하는 연습을 한 것이 그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그리고 틈틈이 운동을 해 두었던 덕을 본 셈.






“퍽”

최광출씨는 박진수씨의 큰 아들을 안전하게 잡아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의 무릎이 최광출씨의 머리와 어깨를 강타했고 그 충격으로 최광출씨는 찰과상과 타박상 등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베란다에서 용감하게 뛰어 내렸던 그 아이는 전혀 다친 곳이 없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진수 그 친구, 최광출씨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당장 형사고소 취하한다고 합니다. 아마 민사건도 잘 해결될 것 같아요.”


“음.. 자기 아들의 생명을 구해줬으니... 김 사무장. 민사사건 파일도 클로징 합시다. 잘 됐네”


나는 김사장을 돌아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진정한 나이스 캣취였구먼. 게임을 종료시키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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